3년전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어떤 사람이 북한에서 예수를 믿다가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미움을 받아 독방에 감금되었다. 그에게 지급된 식량은 하루에 옥수수 알갱이 백 알을 불과했다. 굶어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는 한 달의 독방 생활을 무사히 마쳤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혈색이 좋고 살이 올라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주일이 지났을 때부터 매일 생쥐 한 마리씩 독방에 나타났고, 그는 그걸 잡아먹었다고 했다.
누군가 생쥐를 집어넣어줄 수 없다고 했다. 수용소란 곳에 생쥐가 있을 리 없으며(보는 족족 잡아먹으므로) 그것도 매일 공급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공급해주신 것으로 믿었다.
이 소설은 이 모티브에서 시작되었다.
북한 수용소의 어려움은 단편적이나마 탈북자들 의해 밝혀지고 있다. 그들의 증언이 여럿 출판되기도 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문학작품으로 다룬 경우는 없으며, 기독교적 시각으로 다룬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
최근 미국의 어느 작가가 탈북자를 인터뷰하여 책을 냈다고 하는데, 한국의 문인들이 분발해야 한다.
주인공 <나>는 국경 마을에 사는 20대 여성이다.
그녀는 자유와 평범한 생활을 꿈꾸지만 배고픔이 해결 안된 북한에서는 그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임신을 한 그녀는 아이를 지우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탈북하여 중국으로 간다. 거기서 그는 중국 여자에게 성의 노리개 노릇을 하면서 돈을 마련하다가 결국에는 북한 요원들에게 붙잡혀 광산으로 끌려간다.
<나>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군관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 처음에는 단순한 육체 끼리의 만남이었지만 군관은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나>는 남편을 찾아 남편 따라 탈북한다. 한편으로는 학창시절에 읽은 동구권 소설가의 소설에 나오는 그런 자유를 만끽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남편이 북송됐다는 말을 듣고 중국에 딱히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해, 수용소에 갇힐 각오를 하고 제 발로 북한으로 되건너 간다.
<나>는 원하는 대로 수용소에 갇힌다.
첫날부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고통을 겪는다. 가장 큰 고통은 배고픔이다. 철광석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녀는 오히려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수용소에서 만난 차수명은 알 수 없는 존재다.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온 차수명은 수용소 안에서 기독교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나>에게 아가페적 사랑을 보여준다.
성경도 많이 알고 있는 차수명은 하나님의 존재를 <나>에게 알게 해준다.
수용소에 같은 날 수용된 김수정과 김연화의 삶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천박해질 수 있고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도둑질은 죄가 아니며 죽 한 숟가락 때문에 머리 끄덩이 잡고 싸우는 것은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빵 한 조각 때문에 밥에 불려나가 치마를 걷는 일도 흔한 일상에 불과하며 죽음 또한 언제나 마주치는 익숙한 대상일 뿐이다.
지도원과 사랑을 나누다 배신을 당한 김연화의 죽음.
나중에 결국 탈출을 시도하다가 얼어죽은 김수정.
감자 두 알을 훔쳤다가 죽도록 맞는 사람들.
온몸에 설설 기어다는 이를 잡아서 입에 넣는 동료와 <나>.
그들의 극한 상황은 이 세상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공화국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나>는 예수쟁이라는 의심을 받고 독방에 갇히지만 앞서 말한대로 매일 나타나는 생쥐를 잡아먹고 악명 높은 독방에서 살아나온다. <나>는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차수명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득하게 된다.
<나>는 김수정의 죽음을 계기로 단 한 사람도 탈출하지 못했다는 수용소를 당당히 걸어나오는 기적을 경험한다.
다시 중국으로 도망친 <나>는 처음 탈북 때 만난 김 선교사를 도우며 중국에 머문다.
거기서 <나>는 탈북 여성의 비참함을 목격한다.
마약을 찾는다며 소독하지 않은 손으로 자궁을 헤집어 자궁이 썩도록 하는 인간들.
중국인에게 팔려간 여성은 도망치다가 붙잡히자 결국 자기 스스로 발가락을 작두에 잘라야만 했다. 그는 중국인 부자에게 성적 노리개 노릇을 해서 번 돈을 북한 가족에게 보내며 행복해 했다.
뜻밖의 사건이 터진다.
수용소까지 찾아왔던 군관이 남편을 업고 중국 땅으로 <나>를 찾아온 것이다.
사실 군관은 남편을 체포해 북송시킨 장본인이며, 마음의 갈등을 일으킨 그는 마침 광산 폭약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사경을 헤매는 남편을 병원에서 끄집어내어 업고 온 것이다.
그들과 반가운 해후를 할 사이도 없이 뒤따라 들이닥친 북한 기관원들과 싸움이 벌어지고 그 와중에 <나>만 살아남는다. 김 선교사와 군관, 남편 모두 죽임을 당한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이 남한행을 택하지만 그것 또한 고난의 연속이다.
중국을 빠져나가게 도와준 브로커의 행위는 하나님의 자비가 뜻하지 않은 사람을 통해 도처에 널려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북한 수용소에 남아있는 차수명을 통해, 모압 평지에서의 모세의 마지막 설교를 통해 남한 땅도 결코 복된 곳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거짓 풍요가 넘치는 남한. 그리고 수치의 역사가 지배하고 있는 북한 땅을 함께 바라보면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 기독교적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나>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백지 상태로 남겨두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만이 대안이라는 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