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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저편

청와대 옆 효자동- 옥인동 일대의 서촌(西村)에는 오래된 골목길이 원형으로 남아있다. 첨단의 도시 서울 한 복판에 600년의 역사를 가진, 골동품 같은 골목이 존재하는 것이다. 골목은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며 동시에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촌에서 태어난 주인공 소년은 자폐아인데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폐아는 지능이 낮은 데 비해 서번트 증후군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능이 높아 석학(碩學)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컴퓨터로 여러 시간 걸려서 풀 수학 문제를 단 몇 초만에 풀어내기도 한다. 그래도 자폐증이므로 일반인의 판단으로는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 소년은 서번트 증후군 외에 또 하나의 능력..

청와대 옆 효자동- 옥인동 일대의 서촌(西村)에는 오래된 골목길이 원형으로 남아있다. 첨단의 도시 서울 한 복판에 600년의 역사를 가진, 골동품 같은 골목이 존재하는 것이다.
골목은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며 동시에 오랜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촌에서 태어난 주인공 소년은 자폐아인데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폐아는 지능이 낮은 데 비해 서번트 증후군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능이 높아 석학(碩學)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컴퓨터로 여러 시간 걸려서 풀 수학 문제를 단 몇 초만에 풀어내기도 한다. 그래도 자폐증이므로 일반인의 판단으로는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주인공 소년은 서번트 증후군 외에 또 하나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간질과 같은 발작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이마에 뿔 하나가 솟아나 일각수(一角獸)로 변신하는 것이다.
소년은 한밤중에 일각수로 변신하여 서촌 일대의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을 다니며 시간의 골목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평생 노름만 하는 노름꾼이다. 그는 언젠가 한몫을 잡을 꿈을 꾸며 오늘도 노름방을 들락거린다. 엄마는 파출부를 하며 어렵게 살지만 남편이 한때 대학생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을 용서해준다. 대학생이 되는 것이 엄마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누나는 골목에서 주워온 아이다. 누군가 아이를 낳자 골목에 버린 것을 소년의 엄마가 주워와서 키웠다. 그런데 훗날 그녀 자신 원하지 않은 아이를 임신하고, 갓난아기를 골목에 버리게 된다.

소년이 시간의 흐름, 시간의 비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헌 책방 대호서점을 열고있는 공씨 덕분이다(실제로 오래된 ‘대유서점’이 있음).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공씨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홀아비로 살며 복수를 위해 어두운 서점 구석에서 칼을 갈고 있다.

이 두 사람 외에 또하나 시간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자 아이가 맹인인 예올이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청력이 뛰어나다. 예올이의 경우 시간의 흐름을 들을 수 있다.

예올이의 엄마는 남편이 명퇴를 당하자 그 퇴직금으로 사업을 했으나 돈을 다 털리고 만다. 죄책감에 골목의 한 전봇대에 목을 매 자살하자 아내를 사랑하던 남편도 같은 전봇대에서 자살하고 만다.
졸지에 고아가 된 예올이는 밤마다 복지원에서 뛰쳐나와 부모가 자살한 골목에서 울부짖으며 죽은 부모를 그리워한다. 이때 나타난 자가 사단(악마)이다. 그는 예올이에게 죽은 부모를 만나게 해준다며 꾄다. 깨끗한 영혼, 깨끗한 시간의 소유자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 사단의 임무다.

일각수로 골목을 다니던 소년은 예올이와 친하게 되지만 그녀가 곧 죽음의 영혼을 만나러 떠나가면서 헤어진다. 그녀가 죽음의 길에서 되돌아오지 못할까봐 안타까워하던 아이는 대호서점의 공씨로부터 시간의 비밀을 듣게 된다. 즉,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시간의 역류를 알면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고, 심지어 시간을 잠깐 멈출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성경 구절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평화롭던 서촌에 두 건의 살인사건이 잇따라 터진다. 경찰은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하고 오리무중에 빠진다.
그러나 공씨는 사단이 살인사건을 저지름으로써 공씨와 아이 그리고 예올이가 시간의 비밀을 찾는 것을 방해하려 한다는 사실을 안다. 공씨는 두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벼린 온 칼을 꺼낸다.

한편, 아이는 우연한 기회에 원주율 파이() 값을 외우면서 여기에도 시간의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된다. 3.141592---로 끝없이 계속되는 숫자의 연속에 시간의 리듬이 있고, 그 리듬의 미세한 변화로 시간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만 자리 이상 숫자를 외울 수 있는 능력은 서번트 증후군 덕분이다. 아이는 원망스러운 자신의 자폐증이 결국 인간의 시간을 보호하고, 시간의 비밀을 알려주려는 하나님의 높은 뜻임을 자각하게 된다. 자신의 자폐증을 극복하는 순간이다.

시간의 비밀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사랑이 더 소중함을 알게 된다.
추운 겨울 새벽, 예올이와 함께 누나가 낳아서 버린 새 생명을 옷가지에 싸안고 골목을 나올 때 사단이 오토바이로 덮치지만 공씨가 죽음으로써 오토바이를 막아준다.
다른 사람을 위한 헌신적인 희생이야말로 시간의 비밀을 아는 진정한 의미이며, 사랑이야말로 모든 아픔을 이겨내는 것임을 경험한다.

시간의 비밀 이야기는 다 알 수도 없고, 다 알 필요도 없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 소년-소녀처럼 순수한 마음을 회복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펼칠 때 시간의 비밀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사족이지만, 이 아름다운 서촌 골목이 재개발 명목으로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르는 현실이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도 소설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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